[기사] 하루 2-3시간 쪽잠, 세종대왕이 허리띠 풀고 신하와 싸운 이유(남영신 대표 인터뷰)

[인터뷰] <세종의 정치> 3부작 펴낸 남영신 작가를 만나다

26.06.18 16:34 | 최종 업데이트 26.06.18 16:34 | 김슬옹(tomulto)

국어운동 50여 년 한 길을 걸어온 남영신 선생이 스스로를 “세종 전도사”라 부르며 책을 냈다. <세종, 정의를 세우다>·<세종, 갈등을 넘어서다>·<세종, 백성을 살리다> 세 권을 한꺼번에 선보인 <세종의 정치> 시리즈다.

필자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1987년 무렵 서울법대 출신이 <우리말 분류 사전>을 펴냈다는 기사가 대부분의 신문에 대서특필 됐다. 그는 1967년 서울법대 1학년 때 법전을 공부하다 암호문(?) 수준의 난해한 문장에 의문을 품고 국어 운동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그 뒤 평생 우리말글 사랑의 길을 걸어온 그가, 이번에는 <세종실록> 6년 탐독 끝에 ‘세종 전도사’가 됐다. 남 작가를 지난 15일, 그가 직접 지은 ‘세종학교 보은 수련원’에서 만나 책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아래는 남 작가와의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세종 전도사’를 자처한 이유

직접 세운 <보은 세종학교 수련원> 앞에선 남영신 작가
직접 세운 <보은 세종학교 수련원> 앞에선 남영신 작가 ⓒ 김슬옹

– 세종에 관한 책은 이미 많이 나와 있습니다. 저도 두 권이나 냈고요(웃음). 그런데도 굳이 “세종 전도사”를 자처하시며 보태신 까닭이 궁금합니다.

“그 많은 책에도 불구하고 제가 꼭 하고 싶은 말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자원이 없다, 기술이 없다, 자본이 없다고 한탄합니다. 그러나 제가 세종에게서 배운 결론은 그 반대였어요.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자원도 기술도 자본도 아니라 ‘좋은 정치’라는 것입니다. 나쁜 정치는 자원이 넘쳐도 사람을 못 살게 하고, 좋은 정치는 없는 자원도 만들어 냅니다. 세종은 그 ‘좋은 정치’가 관념이 아니라 실제로 가능했다는, 지구상에 거의 유일한 증거예요. 저는 그 증거를 증언하려고 이 책을 썼습니다.”

– 세 권을 관통하는 열쇳말로 ‘정의’를 고르셨습니다. 그리고 그 정의를 다시 셋으로 나누셨더군요. 따뜻한 정의, 부드러운 정의, 착한 정의. 이렇게 셋으로 나눈 뜻을 풀어 주시지요.

“세종을 세 각도에서 비춘 것입니다. 1권에서는 세종이 내린 판결을 통해 ‘따뜻한 정의’를, 2권에서는 신하들과 벌인 갈등을 통해 ‘부드러운 정의’를, 3권에서는 백성을 살린 정책을 통해 ‘착한 정의’를 보았습니다. 판결과 갈등과 정책. 한 임금의 정치를 이루는 세 결을 따로 떼어 본 셈이지요.”

– 1권 <정의를 세우다>부터 짚어 보겠습니다. ‘따뜻한 정의’라는 말이 자칫 무른 정치로 오해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세종은 누구보다 법을 엄히 적용한 임금이기도 했지요.

“바로 그 점을 책에서 강조했습니다. 세종의 정의는 백성에게는 억울함을 없애 주는 것이고, 관료에게는 잘못을 처벌해 반성시킨 뒤 다시 백성을 위해 봉사하게 만드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인륜을 어기고 사회를 어지럽힌 죄는 예외 없이 엄격히 다스렸습니다. 다만 법을 몰라 죄지은 백성이나 특별한 정상이 있는 경우에는 극형을 피하려 했지요.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정말로 실천한, 보기 드문 임금이었습니다. 죽을 죄를 지은 죄수라도 옥에서 굶주리거나 병들어 억울하게 죽지 않도록 감옥을 수선하고 청소하라 지시한 대목에서 저는 그 따뜻함을 봅니다.”

– 판결 스무 건을 백성의 범죄와 관리의 범죄로 나누신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관리 쪽에는 황희, 최만리 같은 거물이 등장하더군요.

“권력을 가진 자에게 더 엄정한 잣대를 들이댔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형조 좌랑의 수사권 남용, 환곡 비리, 뇌물 사건, 여종을 학대한 집현전 관리… 동시에 비리를 저지른 황희를 몇 번이고 용서하는 모습도 함께 실었어요. 그 둘이 모순처럼 보이지만, 세종에게는 처벌이 목적이 아니라 사회를 화평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쓸모가 있는 사람을 살려서 다시 쓰는 정치, 그게 따뜻한 정의예요.”

– 2권 <갈등을 넘어서다>로 넘어가겠습니다. 책에서 ‘정쟁(廷爭)’을 오늘날의 정쟁(政爭)과 구별하셨지요. 절대 권력을 가진 임금을 상대로 신하가 벌이는 논쟁이라는 점에서요.

“그렇습니다. 정당 정치의 정쟁은 대등한 사람들의 다툼이지만, 조정의 정쟁은 최종 결정권자인 임금을 상대로 한 것입니다. 군주 국가에서는 임금이 반대하는 신하를 내쫓아 논쟁을 끝낼 수도 있어요. 그게 합법이었고요. 그런데 세종 시대에는 신하들이 결코 물러서지 않고 임금과 격렬하게 맞섰습니다. 임금과 신하가 허리띠를 풀고 그토록 오래 다툰 예는 세계사에서도 드물 거예요. 세종을 제대로 알려면 이 정쟁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세종의 ‘부드러운’ 정의

<세종의 정치> 1,2,3 표지
<세종의 정치> 1,2,3 표지 ⓒ 보리출판사

– 양녕대군 정쟁·불교 정쟁·섭정 정쟁 셋을 들으셨는데, 맺음말의 ‘닫힌 영혼과 열린 영혼’이라는 표현이 가슴에 남았습니다.

“세 정쟁을 관통하는 구도를 그렇게 본 것입니다. 한쪽에는 성리학과 중국의 문물을 의심 없이 떠 받드는 교조적·원리주의적인 ‘닫힌 영혼들’이 있었고, 다른 쪽에는 백성을 위해서라면 특정 이념이나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정책을 밀고 나간 ‘열린 영혼’ 세종이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건 세종이 그 닫힌 영혼들을 힘으로 누르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 그 대목이 바로 ‘부드러운 정의’의 핵심이겠군요.

“그렇습니다. 세종의 정쟁은 임금의 절대 권력으로 찍어 누르는 ‘힘의 정의’가 아니라, 설득과 동의로 이루는 ‘부드러운 정의’였어요. 세종은 ‘네 말이 옳다’라는 말을 자주 했지만 ‘네 말이 틀렸다’라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최선만 고집하지 않고, 최악을 피하는 선에서 차선을 택했지요. 그 차선을 세종은 ‘중도’라 불렀습니다. 내 주장에도 상대가 부정할 만한 데가 있고, 상대 주장에도 내가 긍정할 만한 데가 있다… 그 사이 어디 쯤 정의가 있다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왕권과 신권을 가르는 이분법을 버리고, 임금과 신하가 함께 나라를 다스리는 본보기를 보였어요.”

– 마침내 3권 <백성을 살리다>입니다. 솔직히 저는 이 책의 마지막 묶음, ‘글자 정책’을 가장 먼저 펼쳐 보았습니다. 복지·세금에 이어 훈민정음을 ‘정책’의 자리에 놓으신 구성이 새로웠습니다.

“훈민정음을 천재의 발명품으로만 보면 절반만 보는 겁니다. 저는 그것을 노인 복지, 노비 복지, 빈민 구제, 의료 구제, 그리고 공법이라는 세금 개혁과 같은 줄에 놓고 보았어요. 모두 ‘백성을 살리는 정책’이라는 한 뿌리에서 나온 것이니까요. 글자가 없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백성을 가엾이 여긴 마음이, 굶주리는 백성과 병든 백성을 가엾이 여긴 마음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글자를 창제할 결심부터 창제 과정, <훈민정음> 간행, 그리고 널리 퍼져 나간 과정까지를 하나의 정책사로 풀었습니다.”

– 평생 훈민정음을 들여다본 사람으로서 한 가지 여쭙고 싶습니다. 세금 정책인 공법은 여론조사·토론·보완·시행의 네 단계를 거쳤다고 쓰셨는데, 글자 정책에도 그런 ‘백성에게 묻고 함께 가는’ 방식이 깃들어 있다고 보시는지요.

“깊이 공감합니다. 공법은 무려 수십만 명에게 가부를 물은, 우리 역사 초유의 여론조사로 시작됐어요. 임금이 마음대로 정하지 않고 백성에게 물은 겁니다. 훈민정음 역시 만들어 놓고 끝낸 게 아니라, 반대하는 신하들의 논리를 다 들어가며 끝까지 밀고 나갔지요. 묻고, 듣고, 그래도 백성을 위한 길이라 판단되면 흔들리지 않는 것. 그 일관된 태도가 공법에도 훈민정음에도 똑같이 흐릅니다.”

– 3권 맺음말의 제목이 “몸을 수고롭게 하여 후세에 편안함을 물려주라”였습니다. 세종 28년의 그 한마디가 책 전체의 결론이더군요.

“임금이 수고해야 백성이 편해진다… 세종은 이 신념을 평생 몸으로 증명했습니다. 새벽 네 시 무렵에 일어나 책을 읽고, 조회·윤대·경연을 하루도 거르지 않았으며, 밤에는 보고서와 재판 기록을 살피느라 두세 시간밖에 못 잤어요. 사람들이 흔히 임금이라 하면 화려한 궁전과 산해진미를 떠올리지만, 세종은 그 반대였습니다. 실록이 그를 ‘해동의 요순’이라 부른 것은 빈말이 아니에요.”

– 끝으로, 이 시리즈를 통해 오늘의 독자에게 가장 전하고 싶은 한마디를 청합니다.

“세종은 종교인이나 철학자처럼 옳은 길을 설파한 사람이 아닙니다. 한 나라의 정치 지도자로서, 백성이 몸으로 부딪치는 현실의 고통을 풀어 주려고 밤을 지새운 사람이에요. 가진 권력을 허투루 쓰지 않고 오로지 사람을 구하는 데 쓴 임금입니다. 우리가 세종을 이해하고 그 정신을 잇는다면, 사람이 편한 세상, 행복하고 정의로운 세상이 이루어진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세종의 ‘좋은 정치’를 알리기 위하여 세종 전도사가 되겠다고 결심한 겁니다.”

대담 끝 무렵 세종학교를 보은에 세우고자 하는 뜻을 물었다. ‘보은’이라는 지명 명칭이 세종의 보본 정치의 ‘보본’과 같은 맥락이라서 그렇다는 것이다. 세종의 ‘보본’은 자신을 임금의 자리에 있게 해 준 ‘조상’과 ‘백성’이라는 두 가지 근본에 깊이 감사하고 그 은혜에 보답하는 헌신적인 정치를 의미한다고 한다. 이는 반대를 무릅쓰고서라도 조상의 흔적을 지키려 한 강한 책임감과, 백성의 고단한 삶을 끝까지 책임지려 한 지극한 애민 정신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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